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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내 고향 길을 다시 걸은 올레6코스

  내 고향은 서귀포시 보목 마을이다. 거기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서귀포 시내 근처의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매주 교회는 고향 보목교회에 간다.

  고향 보목 마을은 거기를 고향으로 둔 내가 팔이 안으로 굽어서 자랑하는 것 같지만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일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해 본다. 지금은 코스 이름이 변경되어서 6코스 중에 들어있지만, 원래 올레길을 시작한 분들이 맨 처음 올레길을 시작할 때에는 보목마을에서부터 올레길을 시작하여 1코스였던 곳이기도 하다.

  고향인데다 너무 자주 가는 곳이어서 작은 골목, 어디는 누구네 집이라는 것까지 세세히 알고 있어서 올레길이 보목 마을로 지나간다고 했어도 다른 길부터 먼저 걸었고 고향으로 지나가는 올레길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고향 마을로 지나가는 올레길을 시작점부터 종점까지 코스를 따라 걸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5월의 두 번째 토요일 아침.

  6코스의 시작점인 쇠소깍으로 차를 몰고 갔다. 쇠소깍은 서귀포 동쪽 마을인 효돈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류의 바닷가에 있는 계곡으로, 맑은 물이 용천수로 솟아나와 큰 호소를 이루다가 바다로 흘러드는 곳으로, 밀물 때면 바닷물이 역류하여 민물과 섞이기도 하는 특이한 지형을 가진 곳이다. 


  올레6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는 소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앞에 나무로 만든 간세와 돌판에 새겨진 6코스 지도로 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큰 돌비에 쇠소깍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여기 옮겨본다.

  「쇠소깍은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효돈천 끝지점에 위치한 깊은 소로서, ‘쇠’는 효돈을 나타내고, ‘깍’은 끝지점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이 쇠소에는 용(龍)이 살고 있다 하여 ‘용소’라고도 전해오는데,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릴 만큼 영험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쇠소깍’에는 애뜻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350여 년 전 하효마을에 어느 부잣집 귀여운 무남독녀와 그 집 머슴의 동갑내기 아들 등 처녀, 총각이 신분상 서로의 사랑을 꽃피우지 못하자 비관한 총각은 쇠소깍 상류에 있는 남내소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다. 이틀 뒤 늦게 안 처녀는 남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신이라도 수습하게 해달라며 쇠소깍 기원바위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드렸는데 마침 큰 비가 내려 총각의 시신이 냇물에 떠내려오자 처녀는 시신을 부둥켜안아 울다가 기원바위로 올라가서 사랑하는 임을 따라 ‘쇠소’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후 하효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가련한 처녀총각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동쪽에 있는 용지동산(龍旨童山)에 당(堂)을 마련해 영혼을 모시고 마을의 무사안녕과 번영을 지켜주도록 기원을 드리게 되었는데, 지금에는 ‘할망당’ 또는 ‘여드렛당’이라 불려지고 있다.

  또한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먼저 할망당에 와서 용지부인석(龍旨婦人石)을 모셔다가 제단에 올려놓고 제를 지낼 만큼 효험이 높다.

  이처럼 쇠소깍은 옛날부터 마을에서는 성소로 여길 만큼 신성한 곳이었으며, 돌을 던지거나 고성방가를 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바람이 불고 일기가 나빠진다고 전한다.」 

 

  쇠소깍을 출발하여 소금막 바닷가를 바라보며 서쪽으로 걸었다. 바닷가에는 엄청난 낙엽들이 밀려와 있었다. 큰 비에 효돈천을 따라 내려온 낙엽들이 바다까지 흘러내려왔다가 파도에 밀려 다시 모래밭으로 떠밀려 올라온 것 같았다. 낙엽들을 모아 담은 포대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소금막 바다와 그 서쪽의 하효항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하효항을 지나서부터는 약간의 경사진 길을 올라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바다와 항구를 내려다보며 걸었다. 하효항 남동쪽 바다 멀리에는 야트막하고 납작한 지귀도가 엎드려 있었다.

  하효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보목 마을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우리 교회 집사님네가 경영하는 포도농장이 있어서 잠시 그곳에 들러 농장 구경을 하였다. 줄기줄기 뻗어 나간 가지들마다 작은 포도송이들이 여름을 기다리며 커가고 있었다. 농장 안에서 축복기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보목 마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계절의 여왕 5월 중순의 봄 햇살이 따스했고, 푸른 바다가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바닷가 풀밭을 따라 피어있는 꽃들은 해수에 강한 꽃들이 대부분인데, 그 꽃들이 봄 햇살에 더욱 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목 마을 동쪽 포구 앞에는 제지기오름이 버티고 앉아서 마을과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포구 앞 바다 남서쪽으로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만한 거리에 섶섬이 있어서 제지기오름과 마주 보고 있다. 이 제지기오름과 섶섬은 보목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6코스는 제지기오름까지 와서 오름 정상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계속 서쪽으로 가는 것으로 코스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오름은 나의 고향에 있는 오름인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올랐던 오름이어서 이번의 6코스 걷기에서는 올라갔다 오는 것을 생략하였다. 그 대신에 오름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판에 쓰여 있는 대로 제지기오름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제지기오름

■ 위치 : 서귀포시 보목동 275-1번지 일대
■ 높이 : 표고 94.8m(산책로 2개소 650m / 2개소 1115계단)
■ 유래 : 이 오름 남쪽 중턱의 굴이 있는 곳에 절과 절을 지키는 절지기가 있었다 하여 절오름, 절지기오름으로 불리다가 와전되어 제재기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남국의 지명유래:진성기 저), 또한 1800년도 경과 그 이전에 제작된 옛 지도에 “저즉지(貯卽只)”와 저즉악(貯卽岳)“으로 표기되는 등 ”저“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오름 모양이 낟가리(눌)와 비슷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음(제주마을 : 오성찬 저)」

    제지기오름 남쪽 기슭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 코미디언 故 이주일씨의 별장이 있는데, 지금은 누구의 소유로 되어있는지 모르지만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면 곧바로 보목 포구가 있다.

  어렸을 때 보았을 때는 작은 자릿배들과 테우들만 매어놓는 작은 포구였는데, 이제는 방파제를 더 밖으로 내어서 구축하고 얕은 곳을 깊게 파서 시골 포구치고는 제법 포구의 모양을 갖추어 놓았다.

  동쪽 방파제는 넓게 만들어서 그곳에서는 해마다 5월이나 6월에는 이곳의 명물 해산물인 「자리돔축제」를 열곤 한다. 


  보목포구를 지나 서쪽으로 200m쯤 가면 작은 시내인 정수내가 있고, 그곳에는 세월(작은 시내 위에 시멘트 등으로 만들어 놓은 다리 모양의 길을 제주에서는 세월이라 한다. 비가 올 때는 잠겼다가 건천일 때는 지나다닐 수 있음)이 놓여 있다. 올레길은 이 세월을 건너서 가도록 코스가 이어져 있었다.

  「정수내」라는 말은 정수천(淨水川), 혹은 정수천(井水川)라는 말로, 원래는 이 시내의 물이 맑고 깨끗했다는 뜻도 있고, 세월이 놓여진 이곳에서 약 300m쯤 올라가면 맑은 물이 솟아나던 우물이 있다는 뜻에서 이 이름이 붙었는데, 보목 마을 사람들은 「정술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수내를 지나 서쪽으로 걸어가면 바다가 육지 쪽으로 쏙 들어온 곳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작은 포구가 있다. 그리고 포구의 서쪽에는 바닷가 언덕이 있다. 작은 포구를 [큰갯물]이라 부르고, 바닷가 언덕을 [큰갯물동산]이라고 하는데, 이 작은 포구와 작은 언덕이 바로 나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 나는 여름이면 이 포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헤엄을 치며 놀고, 헤엄치며 놀다 싫증이 나면 언덕에 올라가서 나뭇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나뭇가지를 총과 칼로 삼아 병정놀이를 하곤 하면서 쏘다니곤 하였다. 그래서 어릴 적 나의 여름은 온 몸이 까맣게 타서 아프리카 흑인을 방불케 하곤 하였다.

  어린 시절의 큰갯물 포구는 자리돔 잡이를 하는 테우들이 여러 척 매여 있을 정도로 큰 포구로 생각되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는 포구는 왜 이리도 작아졌는지……. 


  올레길은 큰갯물 포구 앞을 지나 큰갯물 동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섶섬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섶섬은 예나 지금이나 푸른 바다 위에 우뚝 서 있고, 섶섬 앞 갯가의 검은 바위들은 기기묘묘한 모양을 하고 잔잔한 파도의 출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섶섬 앞 동애기 바닷가를 주욱 따라 걸으며 옛날 생각에 잠겼다. 잠녀였던 나의 어머니는 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곤 하였는데, 어머니의 물질 터전이었던 곳을 걸으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졌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던 올레길은 동애기 서쪽 구두미 포구를 지나서부터는 바닷가 자갈밭으로 꺾어들었다가 바닷가의 작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걸어가게 되었다. 숲속을 따라 걷다 보면 제주대학교 연수원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곳에서는 숲속이지만 파도 소리가 들리곤 한다.

  바닷가 숲속 길을 지나서 보목하수처리장 마당으로 올라가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곳은 검은여 해안길이다. 검은 바위들이 물속과 물 밖에 넓게 펼쳐져 있어서 [검은여]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곳 해안도로에서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섶섬, 문섬, 새섬, 멀리 보이는 범섬까지 볼 수 있다. 중간에 시원한 물이 솟는 용천수가 있어서 걸으며 지친 더위와 땀을 씻을 수도 있는 곳이다. 


  검은여 해안길을 지나면 길은 [서귀포 칼호텔] 동쪽 울타리를 따라 올라가게 되고, 칼호텔 후문 앞을 지나서 서귀포-보목 간 도로를 만나 인도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다.
 


  조금 걸어가면 칼호텔 입구를 지나게 되고, 다시 꺾여서 [(구)파라다이스호텔] 쪽으로 내려가다가 소정방폭포로 가게 되어 있다.

  [소정방폭포]는 작은 정방폭포라는 뜻으로 정방폭포 동쪽 500m 정도 되는 해안 절벽에 있는 작은 폭포로, 정방폭포처럼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이곳에서는 (구)파라다이스호텔과 (구)이승만 대통령 별장이 있는 곳 절벽의 멋진 경치가 눈앞에 바로 펼쳐지고, 오래 걸은 올레꾼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는 아름다운 바닷가 풍광이 있다. 


  소정방폭포 계단을 올라가면 [제주올레 사무소]가 있다.

  제주올레 사무소 앞에서는 더 멋진 풍광이 펼쳐져서 가는 이의 발걸음을 꼭 멈추게 하곤 한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서쪽으로 500쯤 가면 정방폭포다. 올레꾼들은 여기서 정방폭포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도 이곳은 자주 보는 곳이지만 볼 때마다 환장하도록 멋진 곳이라 다시 정방폭포로 내려갔다. 정방폭포의 장대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주변 절벽들의 경치를 바라보며, 바다와 섬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 있다 올라와서 걸음을 재촉했다.
 


  정방폭포 절벽 위에는 [서복전시관]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가 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정방폭포에 들러 석벽에 <서불과지>라는 글을 쓰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서귀포의 지명이 ‘서녘 서(西)’, ‘돌아갈 歸(귀)’, ‘포구 포(浦)’를 써서 「서귀포(西歸浦)」가 되었다고 하는데, 서복전시관은 서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서복전시관 앞 절벽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쪽으로 돌아간 서복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 길게 목을 뺀 학 같은 모습을 하고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서복전시관을 지나고, 서귀포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이중섭미술관 쪽으로 이어지는 올레길. 길은 이중섭미술관을 지나 서귀포 상설올레시장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천지연폭포 기정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길은 생활 무대가 이곳인 나에게는 숱하게 지나다닌 길인데다 코스 종점인 외돌개까지 가려면 시간이 모자라는 듯하기에 상설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생략하고 이중섭미술관 입구에서 곧바로 천지연폭포 기정길로 향했다.
 


  천지연폭포 기정길은 천지연폭포 절벽 위에 만들어진 산책로로, 높은 절벽 위를 걸어가며 서귀포 항구와 새섬, 문섬, 절벽 아래 경치들을 보면서 갈 수 있는 길이다. 숲이 우거져 있고 테크 시설이 되어 있어서 서귀포 시민들이 운동 코스로,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천지연폭포 위 다리를 지나서 [서귀포시공원(西歸浦詩公園)]으로 올레길이 이어지게 된다. 서귀포시공원은 서귀포시와 한국문인협회서귀포지부가 조성한 시공원으로, 우리나라의 원로 시인과 작고 시인이 쓴 시 중 서귀포를 주제로 쓴 시를 비로 세워 놓았는데, 현재 30여 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넓은 면적에 조성해 놓고 주변을 공원으로 꾸며 이제는 서귀포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공원으로 서귀포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이다.
 


  올레길은 시공원 안을 이리 저리 구부러지며 지나서 남성리 마을 안길을 따라 가다가 삼매봉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날이 저물어가고, 삼매봉도 여러 번 올랐던 터라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생략하고, 삼매봉 남쪽 길을 따라 곧바로 종점인 외돌개 입구 주차장 쪽으로 갔다.

  종점에 도착하니 마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준비를 해 놓았으니 이제는 그만 걷고 빨리 돌아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