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코스 중에 “몇-1코스”로 이름 붙여진 코스가 5개 코스가 있다.
(※ 참고 : 1-1코스(우도 올레길), 7-1코스(제주월드컵경기장~외돌개), 10-1코스(가파도 올레길), 14-1코스(저지리 마을회관~무릉2리 생태마을), 18-1코스(추자도 올레길)
기본적으로 제주섬 본토를 한 바퀴 연결된 코스 외에 섬 지역에 지정된 올레길들과 제주 본토 섬 안에서도 특별히 지정한 올레길들이다.
2014년 1월말의 어느 날씨 좋은 날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길을 걷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해 있는 섬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 다음으로 두 번째의 남단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0.84㎢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4.2km로 해안선을 따라 개설된 해안도로를 다라 걸으면 천천히 걸어서 1시간 반이면 넉넉하게 걷을 수 있는 섬이다.
섬의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의 해발 높이가 20.5m 밖에 안 되는 매우 낮은 섬으로, 우리나라의 유인도 중에서 해발높이가 가장 낮은 섬이다.
인구는 2013년 통계로 246명에 122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가파도 내 토지를 이용하여 농사짓는 이들과 숙박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조금 거주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치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파도에는 주 포구인 가파도 포구(하동 포구)와 상동 포구의 두 개 포구가 있는데, 모슬포에서 오가는 도항선은 상동 포구로 접안한다.
마을은 상동과 중동 하동 등 3 개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회관, 어촌계사무소, 치안센터, 보건진료소 등은 하동 마을에 위치해 있고, 가파초등학교와 노인회관, 전화국 등은 중동 마을에 위치해 있다.
섬의 이름은 개도(蓋島), 개파도(蓋波島), 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 더위, 더푸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 부근에서 표류되어 14년간 억류되었다가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서 쓴 《하멜표류기》에는 가파도를 ‘케파트(Quepart)’라는 지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가파도에서는 매년 4월 중순에서 5월 초 사이에 [청보리축제]를 연다. 가파도는 해발고도가 매우 낮은 밋밋한 섬이어서 볼만한 경관은 별로 없지만 해마다 늦가을에 씨를 뿌린 보리가 봄이 되어 싹이 올라와서 자라게 되면 4월과 5월에는 온 섬이 초록빛 물결로 일렁이게 된다. 거기에 보리밭 너머로 파란 바다가 출렁이고, 그 너머로 절울이(송악산)와 산방산의 경치가 어울어져 보이면 그 경관이 눈 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매료시키는 섬이다.
가파도로 가려면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도항선을 타야 한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상동포구까지는 약 5.5km의 거리로 도항선으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도항선은 삼영호와 21삼영호 등 2개로 다니는데, 아침 9시 출발부터 하루 몇 차례 있다. 몇 차례 있다는 말은 평상시와 청보리축제 기간, 또는 여름철 등 계절과 시기에 따라 도항 횟수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말이다.
나는 2007년 3월초부터 2009년 2월말까지 2년간 가파초등학교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 기간 동안에 학교 내 교원 숙소에 살면서 퇴근하면 거의 매일 카메라를 메고 가파도 한 바퀴를 걸었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 알고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가파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는 제주올레길이 개설되기 전이었고, 청보리축제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2008년 당시 가파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내가 가파도 유지들과 함께 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가파도를 홍보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으로 만들 방안을 의논하곤 했는데, 그 때 의논하며 보리를 농작물로서만이 아닌 축제와 볼거리로 승화시켜 보자고 제의했던 것들이 결실을 맺어서 2009년부터 해마다 청보리축제가 열리고 있다.
가파초등학교에서 근무를 마치고 나온 후 한 번 갔었는데, 지난 겨울방학에는 하루 짬을 내어서 본격적으로 가파도 올레길을 걷기 위해 가파도로 들어갔다. 굳이 올레길을 걷지 않아도 이미 2년 동안 걸었던 길이기는 했지만, 올레길이 개설된 후에 정식으로 코스를 따라 걸어보기 위함이었다.
모슬포항에서 아침 9시 출항하는 21삼영호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갔다.
겨울바다는 북서풍의 영향 때문에 잔잔할 경우가 드문데 이날의 바다는 겨울 바다치고는 잔잔한 편이어서 오랜만에 배를 탔지만 편안하게 가파도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오전 9시 15분 쯤에 상동포구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렸을 때 옛 학부모들과 마을 주민 등 몇몇 아는 분들을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올레길의 시작점에는 가건물을 지어놓고 자전거 보관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많은 자전거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 자전거들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용도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가파도는 지형이 편평한 곳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아주 적격인 곳이다. 또 자동차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은 곳이기 때문에 청정자연의 이미지를 가진 섬으로서도 자전거를 대여함으로써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그리 많이 않아 자전거를 대여해 가는 사람이 없는지 보관소 안에 빼꼭하게 남아 있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간세와 표식 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파도 올레길의 시작은 상동포구에서부터 출발하여 해안을 따라 만들어 놓은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상동포구 방파제 한쪽 끝에는 할망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할망당 앞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되어 있었다.
[패총 가까운 해안 절벽 큰 바위에는 둥글게 돌담으로 울타리를 쌓은 뒤 가운데에 작은 돌 2개를 받쳐놓고 크고 평평한 돌 하나를 얹은 제단이 있다. ‘춘포제단’이다. 제주 민간 신앙에는 ‘제단’이 남자들이 주도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축제성격의 제사가 치러지는 곳이라면,‘당’은 여자들이 주도하여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당을 흔히 ‘할망당’이라 부르는 데, 상동과 하동에 각기 하나씩 있다. 상동의 할망당이 ‘매부리당’. 하동의 할망당은 ‘뒷서낭당’이다. 바다에 깊이 기대어 사는 만큼 할망당은 가파도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할망당 앞을 지나서 상동 마을 안길로 꺾어들었다.
마을 안길은 갈색 아스콘으로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집집의 울타리들이 돌담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돌담은 제주 본섬의 돌담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제주 본섬의 돌담들은 현무암을 깨어서 각이 지고 울퉁불퉁한 돌들을 쌓아올린 돌담들인데, 가파도의 돌담은 바위를 깬 돌담은 거의 없고 바닷가의 둥글둥글한 돌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쌓아놓은 돌담들이 대부분이었다.
돌담 너머로 마을의 마당과 집들이 들여다보였는데, 주민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어느 집 울타리 너머로는 빨간 꽃을 피운 알로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울타리가에 나무들이 몇 그루 심어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섬의 고도가 낮고 해수의 피해가 큰 섬의 특성한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는 못하고 있었으며, 또한 나무의 모양도 바닷가 쪽에서부터 가지가 많이 휘어진 형태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무의 모양이 마치 거친 환경을 헤쳐 나가며 살고 있는 가파도 사람들을 보는 듯하였다.
지나는 길에 이제는 사용하지 않은 우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들여다보았다.
약 150년 전에 주민들이 직접 파서 식수와 빨래터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했는데, 언제나 마르지 않은 깨끗한 담수를 얻을 수 있는 우물이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의 유인도 중에서는 유일하게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서 걸었다.
시멘트 도로의 양쪽으로는 방파제와 축대에는 물고기들의 그림들을 그려놓아서 즐겁게 감상하며 걸어갈 수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북쪽 바닷가에 있는 큰 바위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바위 이름은 ‘큰왕돌’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낮게 깔려있는 바위와 자갈들 사이에 거대하고 우뚝 솟아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듯 하였다.
큰왕돌 앞을 지나니 ‘장태코 정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태는 커다란 대야를 뜻하는 제주말이고, 코는 ‘코지’의 약자로 ‘곶(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 부분)’ 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바다 쪽으로 약각 튀어나간 코지 앞에는 정자가 세워져서 올레꾼들의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장태코정자를 지나서부터는 길이 휘어져서 가파도의 서쪽편 바닷가를 따라가게 되어 있었다.
서쪽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일몰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파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나는 가끔 이곳에서 서쪽 바다로 지는 일몰을 찍곤 했는데, 그 당시 찍었던 일몰 사진 중 하나를 여기에서 공개한다.
일몰전망대를 지나서 남쪽을 보며 계속 걸었다. 걸어가는 앞쪽 바다 너머로 마라도가 다가와 보였다.
냇골챙이 앞에 오니 ‘고냉이돌’이라고 부르는 큰 바위가 길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위가 생긴 모양이 어느 방향에서 보면 고양이가 웅크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고양이의 제주말인 ‘고냉이’로 바위 이름을 붙였다.
올레길은 냇골챙이 앞 고냉이돌을 지나서부터는 바닷가에부터 섬 안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길을 꺾어 올라가면 가파도 쓰레기 처리장이 있다. 사실 가파도의 쓰레기는 주민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있지만 낚시꾼들과 관광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다가 바다를 통해서 해안으로 밀려 올라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해안길을 걸어보면 실감할 수 있다.
본섬에서는 쓰레기 처리장에 매립장이 있지만, 가파도에서는 매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쓰레기들을 처리장에서 태우고 있는 형편이다.
쓰레기 처리장 뒤편으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풍차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풍차들은 가파도의 불리한 조건 중의 하나인 강한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드는 시설들로, 청정지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가파도에는 잘 어울리는 시설인 것 같았다.
쓰레기 처리장을 지나서 길은 다시 꺾여 청보리밭 B코스를 따라 가파초등학교 뒤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겨울이어서 보리는 초록빛 싹만 내민 채 자람을 멈추고 있어서 조금 길게 자란 잔디 같은 형태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겨울의 한가운데서 온 들판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가파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겨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보리밭 가운데에는 몇 개의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바위들은 고인돌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자세한 조사와 연구를 한 결과 일부 몇 개만이 고인돌로 추정된다고 조사되었다고 한다.
가파초등학교 뒷길에 이르렀다.
몇 년 전 여기에서 2년 간 근무했던 추억이 묻어나서 다시 찾아 들여다 본 가파초등학교가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뒷길을 걸어서 청보리밭 B코스가 끝나고, 상동과 하동을 연결하는 가파도의 중심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가파도 전화국 앞에서부터 청보리밭 A코스로 연결되어 북동쪽 방향으로 올레길이 향하고 있었다.
걸어가는 방향 정면으로 푸른 바다가 열려 있고, 바다 너머로는 송악산과 산방산과 군산과 형제섬이 보이고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어 바다 너머로 펼쳐지는 경치를 구경하며 개엄주리코지로 나왔다. 개엄주리코지에 만들어 놓은 파고라 쉼터 양쪽으로는 상동 포구에서부터 가파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해안도로가 쭉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 해안도로 안쪽으로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돌담이 겹담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찌 보면 마치 제주 본섬에 왜구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환해장성 같은 모습이었다.
개엄주리코지에서부터 가파도 동쪽 해안을 따라 쭉 이어진 길을 따라 하동 쪽을 향해 걸었다.
이 길은 이곳에 근무하면서 퇴근하면 거의 매일 걸었던 길이어서 더욱 정겨웠다.
그렇게 이 길을 걸을 때면 잠시 머물러서 우리 집이 있는 서귀포 쪽을 향한 이곳에 돌탑을 쌓아올리곤 했던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돌탑 이름을 “그리움의 탑”이라고 이름 지었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그리움의 탑은 누가 쌓아올리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둔 탓인지 허물어져서 돌탑을 쌓았던 흔적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아래 사진은 내가 쌓아올렸던 그리움의 탑과 지금은 흔적만 남은 곳]
그리움의 탑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옹짓물정자가 세워져 있고 그 앞은 가파도 공동묘지다.
섬 생활에 온 생을 바친 이들이 생을 마감한 후에 편안한 쉼을 쉬는 곳. 이 공동묘지에서는 그들의 생전에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바다가 아주 가깝게 내려다보이고, 파도소리가 늘 들리는 곳이다. 그리고 바다 너머로는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들, 마을들이 모두 바라보이는 곳이다. 그들은 이제 이곳에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공동묘지 앞을 지나서 포제단 쪽으로 가는 길의 바닷가 쪽으로 워싱턴야자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제대로 싱싱하게 자라지 못하고 말라서 죽어가고 있었다. 워싱턴야자나무가 원래 해수에 강한 식물이지만, 이곳 가파도의 파도가 일으키는 포말과 거친 바닷바람은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나보다.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악조건을 이기고 튼튼하게 살아나서 큰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포제단 앞에 도착하였다.
‘포제단’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음력 2월 중에 날을 택하여 남자 주민 대표들이 제관이 되어 3박4일 동안 몸을 정결하게 한 후에 재물을 마련하여 하늘에 천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포제단은 자연석들로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올려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는 북쪽을 향한 곳에 넓적하고 편평한 바위로 제단을 만들어 제물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포제단 앞에는 제관들이 3박 4일 동안 머물러 지내는 집이 있었는데, 이 집을 ‘제단집’이라고 한다.
포제단을 지나서부터는 남쪽으로 향하던 길이 꺾여서 서쪽으로 향하여 가파포구를 향하고 있었다.
남쪽 바다 너머로 마라도가 가까이 다가와 보이고 가파포구의 방파제와 등대가 손짓하고 있었다.
새벽에 고기잡이 나갔던 배인 듯 어선 한 척이 방파제를 빙 돌아 포구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종점인 가파포구에 도착하였다.
오전 9시 15분쯤에 상동포구에 도착하여 9시 20분쯤부터 올레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는데, 옛 추억을 생각하며 풍광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곤 하면서 넉넉하게 걸어 종점인 가파포구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0시 50분.
걸린 시간이 1시간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가파포구의 식당을 운영하는 옛 가파초등학교 시절의 학부모를 반갑게 만나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져서 다시 상동 포구로 향했다.
가파포구에서 상동포구로 가는 길은 가파도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파초등학교 교문 앞을 지나가는 길이다.
걸어가는 데 함께 근무했던 가파초등학교 직원 박선생이 차를 타고 가다가 나를 보고 차를 세웠다.
마침 모슬포에 나갔다 올 일이 있어서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가파초등학교에도 다시 들러보고 천천히 걸어서 1시 20분 배를 타고 갈까 하던 참에 박선생이 11시 20분 배를 타고 나간다고 하기에 같이 가기로 하고 박선생 차를 타고 상동포구로 갔다.
돌아가는 배는 9시에 올 때와는 달리 삼영호였다.
삼영호 갑판에 앉아 오랜만에 박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모슬포 항구에 도착하였다.
5년 만에 다시 가서 걸은 가파도가 그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게 느껴지는 건 “가파도는 느릿느릿 걷는 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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