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5일 다시 추자도를 찾았다.
이번에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6일(음력 4월 8일) 석가탄일이 이어진 연휴여서 지난번에 걷지 못한 추자도 올레길을 완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박 2일 여정으로 갔다.
계절의 여왕답게 어린이날인 이날의 날씨는 화창하고 깨끗하였으며, 바다는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 할 만큼 잔물결도 없이 매우 잔잔하였다.
핑크돌핀호는 잔잔한 바다를 달려서 오전 10시 45분쯤에 추자항에 도착하였다.
추자도 올레길은 여객선에서 내리자마다 걷기 시작할 수 있도록 추자항의 여객선 매표소 앞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매표소 앞에는 18-1코스 올레길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고, 돌판에는 올레길의 코스를 표시해 놓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올레길 표지판 곁에는 커다란 돌판에 추자항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안내되어 있었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 楸子島의 堂浦
추자군도의 별도(別島:상추자) 앞에 있는 당포(堂浦)는 육지 곡식을 제주로 수송하는 수차(水站)이 있었던 해상 요충지이다. 이 추자의 북쪽을 육지, 혹은 육지 사람이라 부르고, 남쪽을 제주, 혹은 제주 사람이라고 부른다. 옛날 추자를 주자(舟子)라 하여 교통로는 첫째 진도를 거쳐 영암군의 화무지(火無只)와 와도(瓦島), 무안군의 대굴포(大堀浦)를 거쳐 나주로, 둘째 추자에서 삼내(三內)섬, 거요량(巨要粱), 삼촌포(三寸浦)를 거쳐 진도로, 셋째 삼내섬, 노슬(露瑟)섬, 황이(黃伊), 고자(高子), 군영(軍營)포를 거쳐 강진으로 통하는 세 갈래의 항로가 있었다. 또 제주와는 당포를 출발 사서(斜鼠)도, 대·소 화탈(火脫)을 거쳐 애월포 혹은 조천포로 들어갔다. 고려 때부터 왜구의 노략질로 충혜왕 2년(1350)에는 한때 추자 백성을 전부 제주의 도근천(都近川)으로 옮겼으나 추자군도 해역은 황금 어장이라 계속 입주하였다.]
추자도 올레길은 상추자의 추자항에서 출발하여 상추자와 하추자를 돌아서 다시 추자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총 길이는 17.8km이며, 코스는 다음과 같다.
추자항 → 최영장군 사당(0.4km) → 봉글레산 정상(1.5km) → 나바론 절벽 정상(3.1km) → 추자교(4.2km) → 추자교 삼거리(4.4km) → 묵리 고갯마루(5.1km) → 묵리마을(6.2km) → 신양2리(6.8km) → 신양항(7.7km) → 모진이 몽돌해안(8.4km) → 황경현의 묘(9.3km) → 신대산 전망대(10.2km) → 예초리 포구(11.1km) → 엄바위 장승(11.6km) → 돈대산 정상(12.8km) → 묵리 교차로(14.0km) → 담수장(14.6km) → 영흥 쉼터(16.2km) → 추자항(17.8km)
추자항에서부터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추자항의 물빛은 파란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항구를 따라 도로변의 화분마다에는 싱그러운 햇살을 받은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추자도 올레길을 걸을 때에 제일 먼저 가게 되는 곳이 추자초등학교이다. 올레 코스가 추자초등학교 운동장 동쪽편을 따라서 최영장군 사당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겨울에 왔을 때는 누렇게 시들어 있었던 운동장의 잔디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이 올라 있었다.
추자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최영장군 사당으로 올라갔다.
고려 말엽에 제주에서 목호의 난이 발생하였을 때에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최영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제주로 가던 중 이곳에 잠시 머물러 어민들에게 끼쳤던 고마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당을 세운 것이라 한다.
사당 입구에는 이곳에 대한 안내문이 돌판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牧胡를 공략할 때 高麗軍의 주둔처
이 섬은 한반도와 제주를 잇는 교통 및 군사 요충지이다. 고려 원종 14년(1273) 4월에 고려의 김방경(金方慶) 장군은 몽고군의 흔도(炘都)와 더불어 전함 160척을 당포(堂浦)에, 또 별도(別島) 안에 군병 1만명을 주둔시켜 바람을 기다려 탐라의 함덕포와 명월포로 상륙하여 삼별초(三別抄)를 무찔렀다. 이어 1백년이 지나 공민왕 23년(1374) 7월에 목호(牧胡) 설질리필사(石迭里必思), 초고독불화(肖古禿不花)가 반(叛)하자 삼도도통사 최영(崔瑩) 장군이 전함 314척을 당포에 머물게 하고, 군병 25,605명을 별도에 주둔시켰다. 풍향에 맞춰 명월포로 상륙, 적이 3천여 기병으로 저항해 왔으나 전멸시켰다. 후일 추자 사람들은 최영 장군 사당(祠堂)을 지어 매년 정월 보름날 장군을 기리어 제사하더니 오늘에는 풍어제(豊漁祭)로 이어졌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사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당 안에는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신위(祖國都統大將崔瑩將軍神位)라 새겨진 커다란 나무 위패가 세워져 있었고, 위패 안의 왼쪽에는 최영 장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안치되어 있었다.
사당 바깥 한쪽편에는 돌판에 사당에 대한 설명을 해서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었다.
[최영 장군 사당(崔瑩 將軍 祠堂)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1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23년(1374) 탐라(현 제주도)에서 원의 목호(牧胡) 석질리(石迭里)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정부에서는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鎭壓)케 하였다. 장군은 원정도중(遠征途中) 심한 풍랑(風浪)으로 이곳 점산곶(點山串)에서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도민(島民)들에게 어망편법(漁網編法)을 가르쳐 생활에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이곳 주민들이 이러한 장군의 위덕(威德)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지었다고 하며, 매년 봄, 가을에 봉향(奉享)하고 있다.
1970년 국고보조에 의해 건물이 복원되었으며, 1971년 8월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로 지정되었고, 1974년 사당 단청(丹靑) 및 담장을 보수함으로서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사당 북동쪽의 능선으로 올라서자 추포도와 횡간도 등의 추자군도에 속해 있는 섬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란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었다.
눈을 돌려 보니 최영장군 사당 지붕 위로 추자항구를 둘러싸고 대서리 마을과 영흥리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따라 봉글레산 쪽으로 걸어갔다.
능선 위로 난 올레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추자군도의 여러 섬들이 둘러싸고 있는 파란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추자항구와 마을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걸어가는 방향으로 앞쪽에 지난번 겨울에 왔을 때 바로 앞에까지 가서 보았던 다무래미섬과 그 너머의 직구도가 가까이 바라보였다.
봉글레산 정상으로 향하여 올라가는 올레길과 다무래미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 길에서 다무래미 방향으로 가서 다무래미 섬을 보고나서 나바론 전망대까지 갔다왔었다.
이번에는 올레길을 따라서 가보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봉글레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아 올레길이 안내인 간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올라갔다.
방향을 꺾어들어 올라가자마자 노을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는 인위적으로 정자를 만들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노을이 지는 서쪽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의 바위 주변에 벤치들이 몇 개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내려다보니 서쪽 바다와 남쪽 바다까지도 훤히 내려다보였다.
다무래미 섬과 직구도, 남쪽으로는 후포와 나바론 전망대도 휜히 내려다보였다.
봉글레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팔각정이 시설되어 있었다. 팔갈정 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바라보니, 전망을 가리는 큰 나무가 없어서 사방팔방 모든 전망이 시원하게 트였다.
정상 동쪽 바위 위에 올라서서 시원하게 트인 사방 경치를 구경하다가 봉글레산을 내려왔다.
올레길은 봉글레산을 내려온 다음에 대서리 마을 골목길을 지나서 추자항의 서쪽편 마을 안을 따라 가도록 안내되고 있었다.
나는 이 길은 여기서부터는 내일 가기로 하고 길을 돌려서 후포를 지나 나바론 전망대 쪽으로 향하여 걸었다.
나바론 전망대를 향해서 가는 길에 후포를 지나면서 보니 잔잔한 후포의 안쪽에는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었고, 바깥쪽으로 나가는 곳에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여 잠시 머물러 카메라에 담았다.
후포에서 나바론 전망대로 가는 길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란히 뻗은 두 갈래 길이었다. 위쪽의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였고, 아래쪽은 걸어서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도였다.
나는 인도를 택해서 걸어갔다. 지난 겨울에 왔을 때는 아무 시설도 없던 이 길이 지금은 쇠파이프를 이용하여 아치를 만들어 놓고 한쪽에는 화분을 놓아서 화분마다 심어놓은 호박(꽃호박인지, 수세미인지)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어 호박들이 자라서 아치를 감고 올라가서 꽃을 피우고 꽃호박이나 수세미를 매달면 이 길은 멋진 풍경을 보여주리라.
나바론 전망대에 도착할 즈음에 물질을 마친 할머니 해녀들이 물질 도구를 보행기를 닮은 손수레에 얹어서 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바론 전망대 앞에 도착하였다.
전망대 위에는 지난번에 왔을 때에 올라가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올라가지 않고, 길을 돌려서 인도 위쪽의 차도를 따라 후포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이 쪽으로 길을 잡아 걸어간 까닭은 나바론 절벽 위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기 위함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절벽 위로 올라가는 길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인 이곳에 계단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 공사가 끝난 길로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나바론 절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절벽 위쪽을 향해 올라갔다.
처음 올라가기 시작할 즈음에는 나무들에 가려서 주변 경관이 보이지 않더니, 절벽 위 바위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엄청난 경관들이 눈으로 들어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기기묘묘한 모양으로 우뚝우뚝 서 있었고, 그 절벽 아래로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바론 전망대가 있는 바위와 추자항, 후포, 대서리와 영흥리 마을, 봉글레산, 다무래미섬과 직구도, 횡간도 등 추자군도의 여러 섬들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 위로 작은 배들이 하얀 꼬리를 끌며 달리고 있는 광경들도 눈에 들어왔다.
절벽을 따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바다에서부터 거의 수직으로 솟아있는 절벽의 높이도 따라서 높아지고, 나바론 절벽의 풍경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감탄을 자아냈다.
어떤 곳은 맨몸으로 오르내리기도 어려운 곳이어서 묶어놓은 밧줄을 잡고 오르내려야만 하는 곳들도 있었다.
절벽 위 능선 위에는 경사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며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나 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감에 따라 추자도 등대가 가까이 다가왔다. 또한 하추자도의 풍광과 수덕도, 청도, 섭생이 등 하추자도 주변의 섬들도 다가와 보였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추자등대를 200m 앞둔 곳에서 영흥리 박씨처사각 옆으로 올라오는 올레길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원래의 올레길을 봉글레산에서 내려온 다음에 영흥리 마을을 지나고 박씨처사각 옆을 지나서 이곳 나바론 절벽 위로 올라온 다음에 추자등대로 향하도록 되어 있는데, 나는 박씨처사각 옆을 지나서 올라오는 길은 내일 다시 올라오기로 하고 길을 돌려서 나바론 전망대로 가는 길에서부터 절벽을 따라 올라왔던 것이다.
추자등대에 도착하여 등대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 위에 올라서서 둘러보니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등대가 세워져 있는 이곳이 상하추자도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곳인 듯,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그리고 주변의 섬들까지 모두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동쪽으로 추자도의 발전소와 그 앞에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추자연륙교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하추자도의 전경이 바라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면 추자군도에 속해있는 작은 섬들이 추자도 주변에 옹기종기 바다 위에 떠 있는 풍경들이 바라보였다.
등대 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올레길을 따라 동쪽 비탈로 내려갔다. 그리고 해안 쪽에서부터 연결되어 올라온 시멘트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그곳에 세워져 있는 파고라 쉼터에 앉아 잠시 쉬고 다시 동쪽으로 향해 있는 올레길을 따라 비탈진 언덕을 올라갔다.
올레길은 추자등대와 발전소 사이의 언덕을 남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언덕의 숲길을 구불구불 내려가서 발전소 옆으로 빠져나와 연륙교로 나왔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를 지나서 하추자도로 넘어갔다.
그리고 올레 간세가 안내하는 대로 묵리 고갯길을 향해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뒤돌아서서 바라보니 연륙교 너머로 발전소와 등대가 세워져 있는 산과 이동통신 안테나 등 상추자도의 모습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언덕길을 올라서서 해변에서부터 올라온 시멘트길과 만나고, 거기서부터는 경사가 거의 없이 평평하고 완만한 숲속 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니 묵리교차로에 다다랐다.
묵리교차로에서는 길이 네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묵리로 내려가는 길, 돈대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 담수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
어느 길로 가야할지 헛갈릴 수가 있었으나 올레길 만을 따라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간세가 안내하는 대로만 가면 되었기에 간세의 안내에 따라서 묵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여 내려가기로 하였다. 지도에서 살펴보았더니 올레길은 묵리로 내려간 다음 신양2리와 신양리를 거쳐서 황경한의 묘를 지나고 신대산을 지난 다음 예초리를 거쳐서 돈대산을 올랐다가 산길을 걸어서 다시 여기 묵리교차로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담수장 쪽으로 내려가서 해안변을 따라 추자연륙교로 향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묵리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산 아래 묵리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마을 가운데서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 보존되어 있었다. 지금은 추자도에 담수장이 시설이 되고, 그곳으로부터 상수도가 연결되어 깨끗한 물이 공급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마을마다 이런 우물을 만들어서 주민들이 식생활 용수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옛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복원하였다고 한다.
묵리 마을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였다.
걸어가는 남쪽편으로 섭생이라고 하는 작은 섬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쯤 도로를 따라가던 올레길은 신양2리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부터는 다시 도로를 벗어나서 신양2리 북쪽편의 산 아래 들판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억새와 띠풀들이 우거진 길을 따라서 이어지던 길은 어느 곳에서부터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으로 들어섰다.
숲길을 한동안 걸어가니 묵리와 신양2리를 섬 안쪽 편에서 이어주는 도로를 만나서 지나고, 다시 계속 산길을 걸어서 묵리와 신양리를 이어주는 도로를 횡단하여 추자중학교 북쪽편으로 나왔다.
5월 5일 이날 올레길 걷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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