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순의 어느 날. 여름이 막 시작된 무렵이기도 하지만, 올해는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아침부터 제법 더웠다.
지금까지 제주올레길을 1코스부터 20코스까지 모두 걸었고 이제 제주 본토에서는 21코스 한 코스만 남겨두었었는데 시간이 있는 이 날 마저 걷기 위해 집을 배낭을 나섰다.(아직 추자도 올레길 코스는 걷지 못했음)
제주올레 1코스는 구좌읍 하도리 해녀박물관을 시점으로 하여 구좌읍 종달리 종달바당까지의 10.7km 구간이다. 다른 코스에 비해서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마을과 농로, 바닷가, 오름 등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구간이다.
코스를 안내하면 다음과 같다.
해녀박물관 → (0.5km)연대동산 → (0.9km)면수동마을회관 → (1.3km)낯물밭길 → (2.6km)별방진 → (3.9km)해안도로(석다원) → (4.2km)각시당 → (5km)토끼섬 앞 → (6.3km)하도해수욕장/철새도래지 → (6.7km)지미봉 밭길 → (7.8km)지미봉 오르는 길/우회분기점 → (8.4km)지미봉 정상 → (8.9km)지미봉 내려온 길 → (9.9km)종달해변쉼터 → (10.7km)종달바당
1코스가 시작되는 곳인 구좌읍 하도리 해녀박물관에 도착하여 차를 세웠다.
그리고 코스를 걷기 전에 먼저 해녀박물관으로 들어가서 전시작품들과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해녀박물관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올레길을 걷고 나서 나중에 해녀박물관 홈페이지의 소개마당를 살펴보고 인용한 자료임)
[제주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해녀들은 잠녀, 잠수, 잠수라고 불려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아주 희귀한 존재로 주목 받아 왔습니다.
해녀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전국 각처와 일본 등지로 원정을 가면서 제주 경제의 주역을 담당했던 제주 여성의 상징입니다.
기록상 이건(李健)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1629)와, 이익태(李益泰)의 『지영록(知瀛錄)』(1695), 김춘택(金春澤)의 『북헌거사집(北軒居士集)』(1670)에는 ‘잠녀(潛女)’로, 위백규(魏伯珪)의 『존재전서(存齋全書)』(1791)에서는 ‘해녀(海女)’라는 명칭이 나오고 있는데, 그 시원은 사람들의 삶과 같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해녀들은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면서 권익보호를 위해 전국최대규모의 항일운동을 거행하여 자존의 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 박물관을 건립하여 세계 문화 유산적 가치를 인정받는 해녀 문화를 전승 ․ 보존하고, 21세기 문화예술의 메카로 가꿔 나가고자 합니다.]
해녀박물관에는 나의 어머니의 자취가 남아있었다. 나의 어머니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물질을 하다가 나와서 호오이- 숨비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나의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더 이상 물질을 하기가 어려워질 때까지 해녀로 살았던 분이셨다. 해녀 일을 하시면서 나의 형제 7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우신 분이셨다.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초가집 모형에서도, 불턱에서도, 해녀들의 물질을 하던 도구들에서도 어머니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곳 해녀박물관에서 해녀들의 자취를 보고 있노라니 아직도 어머니가 살아계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해녀박물관을 살펴보고 나오는데 뒤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며 물질하여 잡은 커다란 전복을 손에 들고 먹으라고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다.
본격적으로 올레길 걷기를 시작하였다.
해녀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잠수기선 탐라호 앞을 지나서 연대동산으로 올라갔다. 연대동산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었던 연대가 있던 동산인데, 이 연대동산은 해녀박물관 야외 마당에 붙어 있는 작은 동산이었다. 동산의 높이는 작지만 주변에서는 아마도 이 동산이 그래도 제일 높은 곳이어서 연대가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연대동산 앞을 지나서 축구장 앞을 지나 면수동 마을길로 들어섰다.
축구장 주차장과 그 주변에서는 마을 아낙들이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뭇가사리에서 바다 냄새가 진하게 배어나왔다.
면수동 마을을 지나자 [놏물밭길]이라고 쓰인 올레 표지판 간세가 보였다. ‘놏물밭길’은 얼굴을 뜻하는 제주말인 ‘놏’+‘물’+‘밭길’의 합성어이니 바로 ‘면수동(面水洞)’에 있는 밭길이라는 뜻이다. 참 정겨운 이름이다. 마을 이름들을 굳이 한자말로 쓰지 않더라도 이렇게 정겨운 우리말(특히 제주말)이 있는데 앞으로 마을 이름들을 우리말로 쓰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놏물밭길을 지나 바닷가로 나왔다.
바닷가에는 작은 포구가 있고, 포구 앞에는 기다란 옛 성이 있었다. 바로 별방진(別防鎭)이다.
별방진 앞의 안내석에는 다음과 같이 이 성에 대해 안내하고 있었다.
[별방진(別防鎭)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4호
소재지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조선시대 군사적인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에는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성곽이 축조되었다.
별방진은 1510년(중중 5년) 목사(牧使) 장림(張林)이 왜선의 정박지가 근처의 우도(牛島)에 있기 때문에 김녕 방호소(防護所)를 이곳으로 옮겨 별방이라 이름하였다.
진을 둘러쌓고 있는 진성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이다. 성안에는 각종 관사(館舍), 창고와 샘이 2곳에 있었다. 성곽의 규모는 둘레가 1,008m, 높이는 4m 정도였다. 동·서·남쪽의 3곳에 문이 있고, 옹성(甕城) 3개소, 치성(雉城) 7개소가 있었다. 축성 때 흉년이 들어서 부역하는 장정들이 인분(人糞)까지 먹어가며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성 밖 어느 곳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 이 샘이 옛날에는 성 안에 있었는지 성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성을 지키던 옛 군인들과 이곳의 주민들이 이용하던 샘이었을 것이다.
별방진을 지나서부터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길가에 갯메꽃과 염주괴불주머니와 갯까치수염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길을 걷는 올레꾼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해안도로변의 호젓한 곳에 [석다원]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석다원 앞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곳의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과 “김대중 대통령 방문 맛집”이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아는 어느 지인이 석다원은 자기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카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라고 하면서 올레 21코스를 걷게 되면 꼭 들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10% 할인해 줄 거라고 하면서……. 한 번 들러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드셨다고 하는 해물손칼국수를 먹고 갈까도 했지만 아직 점심을 먹을 때도 되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기에 다음에 들르리라 생각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석다원을 지나 얼마쯤 가자 길가의 어느 밭에 갯무가 가득 피어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나! 몇 컷을 찍고 다시 길을 걸었다.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앞 해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해녀콩과 황근 등의 희귀 동·식물 서식지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자 황근나무인 듯한 나무들이 여기 저기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도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아직 해수욕을 하기에는 이른 6월 초이지만 누런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해수욕장의 모래밭에는 사람들이 더러 나와서 놀고 있었고, 성급한 어떤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몇몇 보였다.
해수욕장의 정자 근처에는 하얀 꽃을 피운 띠풀들이 가득하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하도해수욕장과 이어진 긴 제방길의 남서쪽은 넓은 호수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철새들이 많이 와서 쉬고 가는 철새도래지이다. 겨울철새들이 다 떠나간 후여서 철새들이 보이지는 않았다.
제방길을 지나서 지미봉 쪽으로 향한 밭길로 접어들었다. 밭에는 보리가 초록빛으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고, 어느 밭 돌담 근처에는 땅채송화가 연둣빛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지미봉 입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코스는 두 갈래로 갈라져서 지미봉을 오르거나 지미봉 옆으로 우회해서 가도록 하고 있었다.
나는 지미봉 오르는 길을 택해서 지미봉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사상자와 인동꽃들이 피어있는 등반로를 따라 올라서 정상에 이르렀다.
지미봉은 해발 166m에 자체높이 160m인 오름으로 제주섬에서는 제일 끝에 있는 오름이어서 지미봉(地尾峰), 또는 지미오름(只未岳)이라 부르는 오름이다.
정상에서는 종달리 마을과 우도와 일출봉, 두산봉까지도 시원하게 전망되는 곳이지만, 이날은 안개가 많이 끼어서 오름 아래 종달리 마을만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쉼터에서 잠시 쉬며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고는 다시 힘을 내어 지미봉 동남쪽으로 내려가는 등반로는 따라 내려갔다.
지미봉을 내려온 다음에는 종달리 마을을 지나고 두문포구를 지나서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금빛 모래가 넓게 펼쳐진 해변을 보면서 종달해변쉼터를 지나 21코스의 종점인 종달바당에 도착하였다.
종점인 종달바당 쉼터에는 정자가 만들어져서 올레길을 완주한 사람들의 쉴 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고, 오징어를 줄에 널어 말리고 있는 어촌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종점의 바로 서쪽에는 올레길 1코스가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종달마을을 지나서 해변도로로 나오는 길목이 21코스 종점과 만나고 있는 곳이었다.
걸어온 시간을 재어봤더니 올레코스 중에는 비교적 짧은 거리인 10.7km의 코스를 약 3시간 20분 정도에 걸을 수 있었다.
21코스를 다 걸음으로 이제 나는 본도의 올레코스는 다 걸어 제주섬 한 바퀴를 걸었으며, 우도의 1-1코스와 가파도의 10-1코스까지도 다 걷고, 이제 18-1코스인 추자도 코스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오려고 지나가는 택시를 무작정 세웠는데, 마침 운행을 하지 않고 쉬는 개인택시였다. 그런데 마음씨 좋은 운전기사 부부가 함께 타고 오며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그냥 태워다줄 테니 그냥 타라고 하여 염치불구하고 탔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노라니 21코스 시점인 해녀박물관 근처에 도착하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시 하고 택시에서 내려 세워둔 내 차를 몰고 중천에 뜬 해를 머리에 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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