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한가운데를 막 벗어난 2월초, 2월의 첫째 토요일.
제주섬은 원래 1월보다 2월이 더 추운 느낌이 나곤 했는데, 이날도 집을 나설 때는 몸을 살짝 움츠리게 할 만큼 조금은 추운 날씨였다. 그렇지만 해가 하늘 위로 점점 솟아오름에 따라 따뜻해 질 것을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이런 날씨에도 올레길을 걷는 데는 그리 불편하지는 않은 날씨였다.
19코스를 걷고서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이번에는 20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우리 집에서 20코스 시점인 김녕 서포구까지는 차를 운전하여 거의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 집에서 9시 쯤에 느지막하게 출발하여 10시 쯤에 도착하여 김녕서포구 제주올레 20코스 시점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하였다.
20코스는 구좌읍 김녕리 서포구에서 출발하여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제주해녀박물관까지의 16.5km를 걷는 코스로, 코스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김녕 서포구 → 김녕 성세기해변(1.2km) → 성세기 태역길(2.5km) → 동부하수처리장(4.1km) → 월정 밭길(4.5km) → 월정리 해수욕장(6.2km) → 연대봉(6.8km) → 행원 포구(7.7km) → 구좌농공단지(9.1km) → 좌가연대(10km) → 한동리 계룡동 정자(12.3km) → 평대리 해수욕장(13.4km) → 벵듸길(13.7km) → 세화포구, 세화오일장(15.5km) → 하도 제주해녀박물관(16.5km)
출발 지점인 김녕서포구 올레길 20코스 표지가 세워진 바닷가에서 바라본 제주의 북쪽 바다에는 검은 바위들 주변으로 파도의 허연 포말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하늬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걸음을 떼었다.
걸어가는 앞으로 풍력발전단지의 풍차들이 겨울 찬바람을 받아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바닷가 근처의 김녕리 마을 안길을 따라 김녕포구 쪽 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옹기종기 다정하게 모여 있는 집들마다 들여다보면 훈훈한 인심이 새어나올 것 같은 마을 풍광이었다.
마을 안길을 지나 김녕포구에 이르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포구 서쪽편 약간 도드라진 언덕에 남아 있는 옛 등대였다.
김녕 성세기알 바닷가에 세워진 이 옛 등대는 속칭 도대불이라고도 하는데,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 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915년 경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허물어졌던 것을 1964년 경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솔칵(송진이 많이 함유된 소나무 조각)을 사용하여 불을 밝히다가 나중에는 석유 호롱불을 켜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옛 등대 옆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작은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올레를 걷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포구를 지나서 성세기해변으로 갔다.
성세기는 옛날에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새끼 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이라고 하며, 김녕 마을 바닷가의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하얀 모래밭 중간 중간에 하얀 모래와는 대조적으로 검은 바위들이 널려 있기도 하여 흑백의 조화를 빚어내기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놀러 나온 몇몇 사람들이 모래밭에서 바다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들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성세기 해변을 지나 계속 걸어가는 길.
이 주변은 모래가 많은 지역이어서 걸어가는 내내 모래가 발에 밟혔다. 불어오는 북서풍에 날려온 모래들이 태역밭(풀밭)을 넘어 인도에까지 가득 쌓여 있었다.
바닷가의 태역밭을 지나서 해녀들의 불턱을 지나고 바닷가를 따라가는 올레길. 길을 갈수록 풍력발전단지의 풍차들이 점점 가깝게 다가서고 있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앞의 바다에는 해안에서 500여 m쯤 떨어진 바다 가운데 큰 풍차 2기가 세워져 있어서 바람에 프로펠러를 천천히 회전시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가 많은 삼다의 섬 제주의 많은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일으키는 시설들이 이곳 김녕리와 월정리, 행원리, 한동리 일대에 많이 들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올레길은 구좌읍 해안도로를 따라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앞을 지나고 동부하수처리장 앞을 지나고 현대중공업 컨소시엄 스마트그리드 실증센터 앞을 지났다. 그리고나서 올레길은 다시 내륙쪽으로 들어가면서 월정리 밭길로 이어졌다.
월정리 밭길을 지나면서 보니까 이 주변의 농토는 거의 대부분이 모래흙들이었다. 흙으로 채워져 있어야 할 밭들이 거의 대부분이 흙보다 모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어떤 밭들은 주변 밭둑이 허물어져 들어난 모습들을 보아도 모래층이 층층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사나 싶었지만, 이런 악조건의 환경을 극복하면서 이런 토양에 알맞은 농작물을 골라서 재배하면서 환경을 이겨나가는 이곳 농민들의 땀과 노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월정 밭길을 지나서 다시 바닷가 쪽 월정 포구로 나왔다. 작은 포구에는 거기에 알맞게 작은 고깃배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구의 방파제 근처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하얀 모래가 깔린 작은 해수욕장 월정해수욕장이 있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파도의 하얀 포말을 몰고 와서 모래밭에 올려놓곤 하여 겨울 해수욕장은 쓸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월정해수욕장을 지나 길가에 카나리아야자 나무가 사열을 벌이며 서 있는 길을 지나서 다시 길을 꺾어든 다음에 연대봉으로 올라갔다.
연대봉은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언덕 위에는 2층으로 지어진 팔각정자가 있었다. 이제야 지어진 듯 정자의 기초 바닥인 시멘트도 새것이었고, 정자 앞 잔디도 이제야 심어져 있었으며, 주변 조경수도 이제야 심어놓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자 위에 올라가 보니 주변 경관이 탁 트여서 행원리와 주변 마을들이 훤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 연대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강원도 불영암에서 한 기인이 동복에 들어왔다. 그 때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을 그 기인에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동쪽으로 몇 리를 더 가면 좋은 산이 있는데 거기에 거처를 정하는 게 좋을 듯 하오.”
기인은 스님의 말대로 동쪽으로 가서 이 연대봉 밑에 머물렀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인은 상봉에 올라 사방에서 바람이 이 마을로 모여들게 하였다. 마을은 강풍으로 삽시간에 황폐해지고 말았다.
갑자기 재난을 당한 마을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의논한 결과, 이런 형상은 연대봉의 그 기인을 섬기지 않은 탓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 기인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기로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기인을 연대봉에 봉안하고 그들의 면화수복을 빌었는데, 지금도 무당들의 봉신처가 되고 있다.]
연대봉을 내려와서 행원포구 쪽으로 걸었다. 행원리 마을은 연대봉에서 포구까지의 사이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아담한 마을이었다.
포구로 가는 큰 길가에 행원리(杏源里) 설촌유래에 대하여 안내하고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그 내용을 여기에 다시 안내한다.
[행원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30여 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행원리는 ‘한개’라는 포구를 중심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나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행원리의 옛 이름은 ‘어등개’ 또는 ‘얻은개’였다. 이는 하늘로부터 ‘얻은’, 곧 좋은 포구를 거느리고 있는 마을이라는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옛 문헌들은 행원리의 포구를 두고 ‘於等浦’ 또는 ‘漁登浦’라고 하였다. 이는 ‘어등개’의 한자를 차용한 표기이다. 그러니 ‘어등개’는 오랫동안 지금의 행원리의 마을이름이 되었다가 19세기 말에 살구나무가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행원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 때 행원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원포구에 이르러서 보니, 과연 하늘이 선물로 주어서 ‘얻은’ 포구답게 지형이 자연적으로 방파제를 이루고 있어서 안쪽으로 깊숙한 곳까지 바다가 들어와서 포구를 만들어 주고 있는 곳이었다. 올레길은 그 자연포구 위에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서 자연적인 방파제를 지나서 다시 마을길로 들어오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행원포구를 지난 길은 행원리와 한동리 사이의 농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어서 걸어가는 내내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 하얀 풍차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농로를 걸어가다가 좌가연대에 도착하였다.
좌가연대는 한동리 바닷가 야트막한 언덕에 세워져 있는 연대로, 도 기념물 제23-1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연대라고 한다.(※ 제주도에는 모두 38개의 연대가 있었다고 함)
좌가연대를 지나 토질이 거의 모래로만 이루어져 있는 밭들을 보면서 한동리 바닷가로 나왔다. 길을 지나가면서 본 밭들 중에는 정말 어떤 밭은 이게 밭인가 그냥 모래벌판인가 모를 정도로 토질이 거의 모래로 이루어진 밭들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억척스럽게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이곳의 농부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지막하게 10시쯤부터 길을 걷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인지 몹시 허기가 졌다. 중간에 밥을 사먹을 만한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는데, 한동리 바닷가로 나왔더니 “인카페”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 카페에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식사거리도 팔고 있어서 고픈 배의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한동리 바닷가를 지나서 멀리 보이는 해녀박물관 건물을 목적지로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평대리 바닷가로 잠시 나왔다가 다시 바닷가를 벗어나 길을 걷다가 세화리 마을로 들어섰다.
세화포구 앞 세화 오일장으로 올레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을 걷던 날은 장날이 아니어서 장터는 좌판을 벌이던 평상들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텅텅 비어있었다.
이제 20코스의 종점인 제주해녀박물관이 눈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있는 오후 2시 50분경에 종점인 제주해녀박물관에 도착하였다. 10시쯤부터 걷기 시작하여 16.5km의 거리를 4시간 50분 동안 걸었다. 평균 한 시간에 약 3.3km를 걸은 셈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해녀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김녕 서포구 근처에 내려서 다시 20코스 시점의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서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하면서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 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운전하는 나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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