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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제주올레길 18-1코스, 추자도 올레길 걷기(4)

   추자도 올레길 걷기 이틀째인 56.

휴대폰 시계의 알람을 일찍 맞추어 놓았다가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카메라만 들고 숙소를 나서서 숙소 뒤편에 있는 등대산공원으로 올라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 희끄무레하던 하늘과 바다에 점점 어둠이 걷히면서 동쪽 바다 위 하늘이 차차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메가() 모양으로 떠오르는 해를 촬영할 수 있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런 모양을 촬영할 수 있는 행운이 없었나보다. 해가 떠오르는 부분의 먼 바다에 옅은 안개가 끼어 해가 어느 정도 위로 솟아올랐을 때에야 구름 사이로 붉은 해의 모양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해오름이었지만 그나마 카메라에 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숙소로 내려왔다.

 

 

추자항 근처의 식당들에서는 아침에 일찍 문을 여는 식당들이 거의 없었다. 겨우 한 군데를 찾아서 아침을 먹고 다시 어제에 이어서 올레길을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날의 계획은 어제 걷지 못한 상추자도의 올레길 일부를 걸은 다음 하추자도로 넘어가서 신양항 앞에서부터 남은 코스를 걸을 작정이었다.

 

계획한 코스는 아래와 같다.

 

추자항 영흥리 마을 추자 처사각 추자등대 이동통신 기지국 제주소방서 추자출장소 해안길 추자연륙교에서 하추자도로 넘어감 버스 이용하여 신양항 도착 모진이 해수욕장 황경한의 묘 신대산 전망대 예초리 돈대산 묵리교차로 담수장 추자연륙교 추자항

 

 

제주올레 18-1코스가 시작되는 추자항 여객터미널 앞에서부터 출발하여 추자항 둘레를 돌아서 건너편에서 마을 안길로 올레길 안내를 따라 걸었다.

조용한 마을 골목길에 이날도 어제처럼 맑고 쾌청한 날의 아침 햇볕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마을 안길에서 꺾어서 추자 처사각을 향해 올라갔다.

추자 처사각은 박씨 처사각이라고도 하는데, 추자항 서쪽편 영흥리 마을에서부터 나바론 절벽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올레길의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사당이다.

이곳에 올라서서 돌아보니 추자항과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 등대산 공원 너머로 잔잔한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눈에 들어와서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돌 울타리 안에 벽면의 중간까지 돌벽이 쌓아올려져 있었고, 지붕은 회색 기와를 얹은 작은 사당이었다. 문이 잠겨있지는 않았지만 고리가 끈으로 묶여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사당 앞에는 안내판이 세워져서 다음과 같이 안내되어 있었다.

 

[추자 처사각(楸子 處士閣)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영흥리

이곳은 처사 박인택(朴仁宅)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後孫)들이 건립(建立)한 사당(祠堂)이다.

박인택은 추자도(楸子島)에 사는 테인박씨(泰仁朴氏)의 입도선도(入島先祖)로 조선중기(朝鮮中期)에 추자도에 유배 와서 불교적(佛敎的)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교리(佛敎敎理)를 가르치면서 살았다 한다.

처사각의 정확한 건립연도(建立年度)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마을 주택가에 소규모의 초가(草家)로 건립되어 제()를 지내 오다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짓고 2차례에 걸쳐 보수(補修)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문중 후손(門中 後孫)이 병이 들어 갖가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꿈에 박인택이 나타나 사당을 건립하고 공을 드리면 나을 것이라 하여 그렇게 하자 바로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추자 처사각을 지나서 나바론 절벽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제 나바론 전망대 가는 길에서 올라와서 절벽 위를 따라 걸어와서 만났던 정상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나바론 절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 비경으로, 지역 주민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일컬어지는 나바론 요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알려졌다.

 

 

추자등대를 향하여 걸어서 등대 전망대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에는 어제에 왔었기 때문에 전망대로 올라가지 않고 등대에서 이동통신 기지국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나무로만 깔아놓은 계단으로 엄청나게 긴 계단이었다. 다른 길로 왔기에망정이지 이 계단으로 올라왔더라면 헉헉거릴 것만 갔았다.

그래도 내려가는 도중에 보이는 추자도의 전망이 꽤 좋았다.

 

 

 

이동통신 기지국까지 내려간 다음에 제주소방서 추자출장소 위쪽의 좁은 시멘트길을 따라서 다시 바닷가 길로 나왔다. 그리고는 추자연륙교를 건너서 하추자도로 넘어갔다.

 

 

다리를 건너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히치하이킹(hitch·hiking)하여 신양항 앞에 도착하였다.

 

 

신양항 앞에서부터 하추자 쪽의 남은 올레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모진이 해수욕장 방향을 향하여 걷는데, 해수욕장 근처 들판에서 우연히 하얀 민들레를 발견하였다. 하얀 민들레가 있다는 것은 사진으로나 식물도감을 보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렇게 처음 만나는 꽃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에 지냥 지나친 적이 거의 없다. 꼭 카메라 꺼내어 찍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을 내 컴퓨터에서 여러 가지 폴더를 만들에 분류하여 저장하고 지금 이 블로그에도 올리곤 한다.

 

 

모진이 해수욕장으로 내려가지는 않고 그 앞 들판을 지나서 황경한의 묘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걸었다.

황경한의 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은 꼬불꼬불 올라가는 경사진 산길이었다.

 

 

산길을 걸어 황경한의 묘 앞에 도착하였다.

 

동쪽으로 떠오르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황경한(黃景漢)의 묘가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묘 옆에는 황경한이 어떤 분인가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 안내판의 내용을 아래에 옮겨 적은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져서 그대로 옮겨 적는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 있는 곳이다.

황사영은 1775년 유명한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1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특하였다. 그러나 1790년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 명리를 버리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충북 배론에 피신하여 이름바 황사영 백서를 썼다. 이 백서를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체포되고,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 관노로, 그리고 두 살 된 아들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난주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신자 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 때인 1790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젖내 나는 어린 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한다. 대정 관노로 유배된 그녀는 38년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서울 할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38년에 선종하여 대정성지에 묻혀 있다.

갯바위에 놓여진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지금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아니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는 이곳에 묻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보이는 바다로 튀어나온 바위가 바로 두 살 아기가 버려져 울던 장소이다. 지금 제주교구에서는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 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황경한의 묘 앞에는 넓은 공터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추자십경(楸子10)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 추자 10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두일출(牛頭日出, 우두도의 일출 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매우 아름다움)

2: 직구낙조(直龜落照, 거북 모양을 한 직구도에서 해가 지는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다운 장관을 이룸)

3: 신대어유(神臺魚遊,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 천혜의 황금어장인 신대에서 고기 떼가 뛰노는 모습)

4: 수덕낙안(水德落雁, 사자 형상의 수덕도 섬 꼭대기에서 기러기가 먹이를 쫓아 바다로 쏜살같이 내리꽂히는 광경)

5: 석두청산(石頭靑山, 청도의 사람머리 같은 산꼭대기 암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들이 멋진 경치를 이룸)

6: 장작평사(長作平沙, 신양포구 해변인 장작에 넓게 펼쳐져 있는 몽돌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7: 추호어화(秋浦漁火, 추포도와 어둠 속 앞바다 멸치잡이 배에서 비치는 불빛이 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룸)

8: 횡간추범(橫干追帆, 시원스레 펼쳐진 흰 돛을 단 범선들이 잔잔한 바다에서 둥실둥실 횡간도 앞바다에 떠 있는 풍경)

9: 고도(곽개)창파(孤島蒼波, 관탈섬 부근의 푸른 물결이 세상 인연을 지원 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르는 모습)

10: 망도수향(望島守鄕, 타향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 수평선에서 보이는 우뚝 솟은 망도 모습의 아름다움)

 

여기에 소개한 추자10경은 예전부터 추자도에서 말하여 오던 열 가지 경치이지만, 이번에 올레길을 걸으며 추자도의 풍광을 보았더니, 이 열 가지 경치 외에도 더 많은 아름다운 풍광들을 볼 수 있어서 20경 이상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황경한의 묘에서부터는 신대산 전망대 쪽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내리막길이었다.

황경한의 묘에서 조금 내려가니 길가에 황경한의 눈물이라고 안내하고 있는 샘물이 있었다.

황경한은 이곳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사연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고 안내판에는 소개하고 있다.

 

 

황경한의 묘와 황경한의 눈물을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넓은 바다를 보며 내려가니 인가가 전혀 없는 바닷가에 자갈들이 가득 깔려 있는 곳으로 나왔다.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들이 많이 눈에 띄어서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는 했지만 깨끗한 자갈들이 가득 깔려있는 조용한 곳으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머물러 있고 싶은 곳이었다.

 

 

자갈이 깔린 바닷가를 지나서 산길을 올라가니 신대산 전망대였다.

전망대는 황경한의 묘가 있는 남쪽 언덕이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벤치가 만들어져서 올레꾼들이 잠시 쉬면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시멘트 도로의 끝에 자동차가 올라와서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넓은 공터의 전망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천혜의 황금어장으로, 신대산에서 고기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추자10경 중의 제3경으로 꼽힌다는 신대어유가 이곳이라 한다.

전망대에서는 고기들이 물속에서 가득 뛰어놀고 있음직한 황금어장인 넓은 앞바다와 횡간도, 추포도 등 추자군도의 여러 섬들이 보이고, 멀리로는 보길도 등 전라남도 완도군들의 섬들도도 몇 개 보였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내려가서 예초리로 향하는 올레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신대산과 예초리 마을 사이의 북쪽 바닷가 절벽 위의 숲 속을 지나는 오솔길이었다. 그늘진 숲속을 걸으면서도 바다 경치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예초리 마을 포구 쪽에서부터 이어진 시멘트 길의 끝나는 지점과 만나서 큰길로 걷게 되었다.

거기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해녀였던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물질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예초리 포구를 지나서 바닷가 길을 따라 걷다가 엄장승 바위를 지나니 길이 꺾어들어 학교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버스가 없던 옛날에는 예초리 아이들은 이 길을 지나서 신양리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걸어다니곤 했을 것이다.

 

 

 

 

학교 가는 샛길에서 빠져나온 다음에는 돈대산 정상을 향해서 길이 꺾어들었다.

봄꽃들이 피어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니 봄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래 걸은 후에 경사진 길을 올라가느라고 제법 몸이 지쳤다. 그래서 쉬엄쉬엄 쉬면서 물도 마시곤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서 돈대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돈대산 정상에는 팔각정의 정자가 만들어져 있었고, 큰 나무들이 없어서 사방을 모두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신양리와 신양항, 석두청산의 모습들, 그리고 묵리 마을과 섭생이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돈대산 정상에서부터는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이 평탄한 능선을 따라 한동안 서쪽으로 올레길이 이어졌다.

길을 가는 도중에 지치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또 한참동안 머물러 사진을 찍고는 하였다.

 

 

평탄한 능선이 끝나는 곳에서 하추자도 서쪽 전경과 연륙교 너머의 상추자도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바위가 나왔다.

거기에서 내려다보니 묵리 마을과 섭생이, 담수장, 상추자도의 등대, 봉글레산, 추자항 등이 가까이 있는 듯 모두 내려다보였다.

섬 주위로는 파란 바다가 잔잔하게 섬을 감싸고 있었다.

 

 

 

 

조망바위에서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을 꼬부라져 내려가니 연륙교에서 곧바로 올라와서 마주쳤던 갈림길인 묵리교차로였다.

 

 

교차로에서 이번에는 담수장 방향인 북쪽으로 내려갔다.

숲길을 걸어 내려가니 맑은 물이 가득 고인 추자도 정수장이다. 이 정수장은 바닷물을 끌어올려 담수로 바꾸어 추자도 주민들에게 상수도로 공급하는 아주 귀중한 시설이다.

담수장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담수장 앞 도로를 지나는데 문득 길가에 작은 빨간 꽃이 눈을 끌었다.

토끼풀(클로버) 사이에 토끼풀의 하얀 꽃보다는 조금 크고, 잎의 모양은 토끼풀을 닮은 꽃이었다. 무슨 꽃인지 궁금해서 휴대폰으로 바로 찍어서 식물에 대해서 전문가인 후배에게 전송했더니 곧바로 답변이 왔다.

진홍토끼풀같다고……. 자기도 아직 실물은 보지 못했는데 이런 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식물 전문가도 아직 보지 못한 꽃을 직접 보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담수장 앞을 지나서는 은달산 길로 접어들었다.

뭐 그렇다고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고 은달산 기슭에 도로를 따라 만들어놓은 올레길을 걸어서 연륙교 쪽으로 가는 것이다.

 

 

은달산 길을 주욱 걸어가니 드디어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는 연륙교에 도착하였다.

 

 

 

연륙교에서는 버스를 타고 추자항으로 돌아와서 항구 앞 식당에서 점심으로 시원한 잡어물회를 먹었다.

땀을 흘리며 올레길을 걷고나서 먹는 물회의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이렇게 제주올레길 18-1코스인 추자도 올레길 걷기는 모든 코스를 걷고, 잠시 코스를 이탈하여 다른 곳도 걷곤 하면서 빠짐없이 걸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추자도 올레길 걷기를 끝으로 제주올레길은 모든 코스를 완주하였다.

이제부터는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먼저 걸었던 코스를 다시 한 번 천천히 걸어보리라 다짐한다. 다시 걸을 때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야말로 간세를 하면서 걸어보리라.

 

간세를 하면서 기다리다가 제주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탔다.

여객선은 호수와 같이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려 피곤한 눈을 감고 졸고 있는 사이 어느새 제주항에 도착하여 기적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