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하원동 탐라왕자묘에 대해 소개한다.
신서귀포 강창학운동장 앞에서 중산간도로를 이용하여 탐라대학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순 다리가 있고, 도순다리에서 약 830m를 더 가면 도로변에 [하원동 탐라왕자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는 좁은 농로를 따라 550m를 가면 내를 건너는 작은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중산간도로 표지판에서부터 1.75km 쯤 되는 지점에 [탐라왕자묘]의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는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주차장 남쪽의 풀밭을 따라 내려가면 곧바로 탐라왕자묘 3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의 탐라왕자묘는 탐라국 시대의 성주나 왕자의 묘로 추정하고 있는데,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가서 제주도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제주도에 있었던 옛 탐라국의 영화와 흥망성쇠를 짐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여 소개한다.
블로그에 올리면서도 내용을 잘 알지 못하여 안내판에 쓰여 있는 글을 그대로 여기 옮겨 놓는다.
하원동 탐라왕자묘
제주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54호(2000.6.21.지정)
소재지 : 하원동 21번지
성주왕자(星主王子)는 탐라국시대(耽羅國時代, 서기 576 ~ 1005)의 왕족을 나타내는 작위(爵位)로서 성주는 탐라국왕(耽羅國王)을 말한다. 고후,고청,고계(高厚,高淸,高系) 등 3인이 신라로부터 처음 작위를 받아 세습하여 왔으나, 조선조 태종 2년(1402년)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되었다.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모두 3기다. 이곳의 왕자묘에 대한 기록은 이원조(李源祚) 제주목사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1842년) 대정현 고적조(大靜縣 古蹟條)에 ‘왕자묘는 대정현 동쪽 45리에 있고, 궁산(弓山) 양쪽 하천(河川) 사이에 3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왕자묘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1998~1999년까지 2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잘 다듬어진 석재(石材)로 4~8단의 판석과 활석으로 축조된 방형석곽묘(方形石槨墓)로서 목관(木棺)을 사용했다. 고려말 조선 초기(13~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당 시대의 자기편과 소옥(小玉), 혼유석(魂遊石), 석재향로, 문인석(文人石) 등이 출토되어 당 시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추정되면, 제주도 묘제사(墓制史) 변천 과정 연구에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제1,2,3호 분(墳)은 1910년 이후 여러 차례 도굴되었으나, 2001년도에 복원하였다.
가장 남쪽에 있는 제1호분은 3기 중 가장 잘 만들어진 분묘(墳墓)이며 죄우에 문인석이 있다. 점판암(點板岩) 판석을 받침돌로 쓰고 현무암(玄武岩) 판석을 세로로 맞춰 세워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 4.3m× 동서 3.0m× 높이 1.0m이다. 제2호분은 3기 중 가운데 있으며, 1호분과는 달리 점판암 활석을 7~8단으로 수평쌓기하여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 4.3m× 동서 3.0m× 높이 1.0m이다. 제3호분은 북쪽에 있다. 3기 중 가장 먼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무암 판석을 세로로 맞춰 세워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 4.5m× 동서 3.1m× 높이 6.5m이다.
묘역 3기를 조사한 결과 내부 층위는 대부분 ①표토층, ②흑갈색부식토층, ③황갈색점토질층, ④흑갈색부식토층, ⑤황갈색점토질층, ⑥목탄층, ⑦흑갈색부식토층, ⑧황갈색점토질층, ⑨흑갈색부식토층, ⑩황갈색점토질층, ⑪목탄층, ⑫흑갈색부식토층, ⑬황갈색점토질층, ⑭목탄층으로 층위가 구성돼 있다.
'제주섬의 이곳 저곳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섭거리, 그리고 청소년 축제 (0) | 2010.05.24 |
---|---|
"휴애리"에서 자연과 동물과 함께 놀기 (0) | 2010.05.09 |
유리로 만든 환상의 성 [유리의성] (0) | 2010.04.12 |
'헹기머체'를 아시나요? (0) | 2010.04.10 |
올레길 1코스를 걷다가 만난 성산포 조가비박물관 (0) | 201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