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뫼의 위치
군뫼는 서귀포시 예래동과 안덕면 창천리, 대평리의 경계를 이루는 삼각지점에 위치해 있는 오름으로, 각각 예래동 마을에서는 북서쪽, 창천리 마을에서는 남쪽, 대평리 마을에서는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 이름의 유래
이 오름의 이름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오름의 모양이 마치 군인들의 막사인 군막(軍幕)을 친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군뫼’, 혹은 ‘군메’라 하며, 이를 한자 표기로 군산(軍山)이라고 한다.
둘째는 이 오름이 제주의 다른 오름들에 비해 가장 마지막에 솟아오른 기록이 있는 오름으로, 나중에 생겨난 오름이라고 하여 ‘쓸 데 없는 군더더기 산’, 또는 ‘가외로 더한 산’이라는 뜻으로 ‘군뫼(군메)’라 한다.
셋째는 산이 솟아날 때 그림자 같이 보였다고 하여 그림자를 뜻하는 제주어인 ‘굴메’에 오름이 붙어서 ‘굴메오름’이라고 한다.
넷째는 군산((軍山)이라는 한자 표기 외에 ‘서산(瑞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려 목종 7년(1007년)에 이 산이 폭발하여 솟아나니 상서로운 산이 솟았다 하여 상서로울 ‘서(瑞)’자를 써서 ‘서산(瑞山)’이라고 한다는 설 등이다.
▲ 군뫼를 찾아가는 길
군뫼의 등반로는 네 군데서 시작이 되는데, 각각의 등반로가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천삼거리에서 동쪽으로 약 460m를 가면 도로 남쪽에 “군산산책로”라고 새겨진 돌 비석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꺾어 남쪽의 소로를 따라 약 570m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며, 삼거리에서 남서쪽으로 꺾어서 농로를 따라 약 520m를 가면 군뫼 동쪽 등반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같은 길의 “군산산책로”라고 새겨진 돌 비석 안내판에서 남쪽의 소로를 따라가다가 삼거리에 꺾어들어 가지 않고 계속 직진하여 약 1,030m를 가면, ‘군산산책로’ 안내판이 표시되어 있는 곳에 이르게 되며, 여기서 서쪽의 소로를 따라 약 440m를 걸어가면 뫼 동쪽 등반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둘째, 창천삼거리에서 창천초등학교 앞을 지나 서쪽으로 약 400m를 가면 창천초등학교 앞 교차로가 있으며, 여기에서 남쪽의 소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내리막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ㄴ”자로 꺾어 약 400m를 내려가면 창고천 다리에 이르게 되며, 다리를 지나자마자 남동쪽으로 꺾어드는 농로를 따라 오름을 바라보며 약 200m를 걸어가면 커다란 농업용 물탱크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물탱크 옆으로 오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는데, 이곳으로 올라가면 등반로를 따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셋째, 창천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약 1km를 가면 감오름(신산오름) 남쪽 감산입구 교차로에 이르게 되며, 남쪽으로 꺾어서 약 160m를 내려간 다음 다시 동쪽으로 창고천을 따라 70m를 가면 창고천 위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창고천 시내를 따라 동-서로 뻗어있는 도로가 있고, 남쪽의 오름 방향으로 향하는 농로가 있는데, 농로를 따라 약 350m를 가면 등반로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게 된다. 등반로의 시작점에는 간이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작은 샘이 있다.
넷째, 감산리 마을의 안덕계곡 위 삼거리에서 대평리 방향으로 약 1,8km를 내려가면 동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에 농로를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약 1.5km를 올라가면 주차장에 이르게 되고, 주차장에서부터 등반로가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곳 주차장은 군뫼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자동차로 올라올 수 있는 지점으로, 정상까지의 등반로 거리도 가장 가깝다.
삼거리에서부터 이 주차장으로 올라오는 길의 중간 약 680m 쯤의 지점에서 등반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등반로를 통해서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 오름을 오르며
감오름을 내려온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군뫼로 갔다.
군뫼는 군산(軍山)이라고도 하는데 안덕면 창천리와 서귀포시 예래동 사이에 위치해 있고, 정상의 모습이 군막(軍幕)을 씌워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등반로는 동쪽의 예래동 쪽과 서쪽으로는 안덕계곡에서 대평 마을로 내려가는 길의 중간쯤에서부터 올라가는 등반로가 있는데, 예래동 쪽 등반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제주의 오름들 중에 생성 연대가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몇 개 안 되는데, 그 중에 비양봉이 고려 목종 2년(1002년), 군뫼가 고려 목종 7년(1007년)에 화산 폭발로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뫼는 오름들 중 가장 나중에 생성된 오름으로 오름들의 막내인 셈이다. 그러나 면적은 368개 오름들 중에 가장 넓어서 2,836.857㎡나 된다. 참고로 둘째 번으로 면적이 넓은 오름은 어승생이다.
오름 동쪽의 예래동 방면에서 등반로를 따라 군뫼 정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일부는 나무를 박아 넣고, 일부는 폐타이어 조각을 깔아서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초보자라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몇 년 전에 예래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많이 올라다녔던 길이라 과장해서 말하면 눈감고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이다.
중턱에 오르면 조금 평평한 곳이 나오고, 거기에 파고라를 설치하여 등반객들의 쉼터가 되도록 하고 있다. 파고라 쉼터에서부터 정상으로 향한 길, 구시물로 향하는 길이 갈라진다.
쉼 없이 그대로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다시 잠간 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사자의 포효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발을 멈추었다. 사자바위다.
이 바위는 형태가 누워있는 사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바위로, 예래동(猊來洞) 설촌과 관련이 있는 바위다. 한 고승이 오름 아래의 마을을 지나다가 해 뜨는 동녘 바다에 우뚝 솟은 섬(범섬)이 범 형상이어서 마을의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마을 서쪽의 군산(軍山)을 사자로 칭하여 사자가 온다는 뜻에서 사자 예(猊), 올 래(來) 자를 써서 예래(猊來)라고 하면 재앙이 사라진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예래하고 지었다고 한다.
사자의 포효소리를 뒤로 들으며 조금 더 올라가자 진지동굴 안내판이 보인다. 그래서 정상으로 향하던 발을 잠시 돌려 진지동굴 표지판을 따라갔다. 진지동굴이 두 개 뚫려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군은 제주섬의 오름들 곳곳에 동굴을 뚫어 함포를 설치하거나 여러 가지 전쟁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이 오름에도 역시 그 당시 일본군이 우리 제주 사람들을 동원해서 뚫어놓은 동굴이 남아 있어서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정상에 이르자 동쪽과 서쪽에 우뚝 솟은 바위 위로 파란 하늘이 더 가깝게 내려와 있었고, 서쪽으로 훌쩍 내려앉은 저녁 해가 실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서쪽편 바위봉우리 아래에도 진지동굴이 뚫려 있었다.
오후의 희미한 햇살 아래 조용히 앉아있는 예래 마을을 내려다보며 시상에 잠기다 내려오는 길에는 구시물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구시물은 굇물이라고도 부르며, 군뫼의 중턱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말한다. 구시물은 아무리 가문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옛날부터 기우제를 지낼 때 이 물을 떠나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도 했고, 숫오름(남자형태) 산인 이 곳에서 나는 물을 떠다 아들을 달라고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했으며, 불치의 피부병도 이 물로 목욕하면 낳았다고 하는 전설들이 전해오는데, 전설이니 믿거나 말거나…….
저녁 어스름 속에서 오름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는 차창 뒤로 저녁 해가 군뫼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 군뫼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 굼부리 형태 : 원추형
▶ 해발높이 334.5m 자체높이 280m, 면적 2,836.857㎡
▲ 오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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