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번에는 그 때 가지 못한 코스를 가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이왕이면 영실로 올라가기 시작하여 돈내코로 내려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등반하기로 계획한 날이 어버이날이라고 그 전날 밤에 Daum社에서 근무하는 큰아이가 집으로 왔다.
그래서 큰아이에게 자기 차를 가지고 돈내코로 따라오라고 하고는 내 차를 가지고 돈내코 등반로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큰아이가 영실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가고 나는 영실에서 등반을 시작하였다.
모처럼 날씨가 활짝 개어서 병풍바위 근처에서는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까지도 훤히 보였다.
유난히 추웠다가 이제야 풀린 봄기운이 흠뻑 배어든 영실 등반로에는 나무마다 새 잎들을 내밀거나 어떤 나무는 그제야 내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밑에는 족도리와 세바람꽃, 제비꽃들이 작은 꽃을 내밀고 수줍게 피어 있었다.
아래쪽에는 그나마 꽃들이 제법 피어 있었는데 선작지왓까지는 아직 봄 기운이 전달이 덜 된 탓일까 예년이면 보일 꽃들이 아직 봉오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한 시간 반이면 올라가는 코스를 나는 그 작은 꽃들을 하나 하나 찾아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며 가노라니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야 올라갈 수 있었다.
토요일이지만 어버이날이어서 그런지 다른 때의 토요일에 비해 그리 많은 사람들이 등반을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사발면을 사서 가지고 간 김밥 두 줄과 함께 먹으니 속이 든든하였다.
곧바로 다음 예정 코스인 서북벽 통제소 쪽을 향해 걸었다. 서북벽 통제소에 다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에는 이 길을 통해서 백록담 서북벽을 밧줄을 잡고 올라 백록담 서쪽 능선과 정상에 서 보기도 했었고, 그 아래 백록담 물이 고여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백록담 물로 밥을 지어먹곤 했던 기억이 났다. 50이 넘은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이고, 또 서북벽으로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으니 옛날의 추억만 되새길 뿐이다.
서북벽과 남벽의 웅장한 경치를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천천히 가노라니 한 시간 남짓 쯤 되어 남벽 통제소에 다다랐다.
거기서도 옛날에 거기서부터 백록담 위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던 옛길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작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등반로는 남동쪽으로 주욱 이어지면서 평궤대피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40여분을 가니 지난 겨울에 거기까지 올라왔었던 평궤대피소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눈이 잔뜩 쌓여 있었던 대피소 위 굴뚝 옆에 지금은 설앵초가 연보랏빛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평궤대피소부터는 지루한 밀림지대. 거의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사방이 나무들로만 빽빽이 둘러싸인 밀림지대를 걸어내려왔다.
돈내코 등반로 입구의 안내소까지 도착하니 3시 20분경이었다.
국립공원 돈내코 안내소 직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10여분. 그분들이 준 따뜻한 차 한 잔에 등반 도중 지쳤던 심신이 다 풀렸다.
등반 후에도 다행인 것은 종아리에 알이 배여 아프거나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오름에 자주 올라 다니며 다리를 조금 단련시켜 놓은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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